조선인들이 활을 잘 쏜다는 이유?
2021.03.11 22:24
그 이튿날 왜적들이 모두 동문(東門) 밖에 모여 칼을 빼들고 날뛰며 위세를 보이므로
주장이 용맹스럽고 건장한 활 잘 쏘는 사람 15명을 뽑아 적들의 기세를 살펴보며 접전(接戰)하게 하려 하니
왜적들이 되돌아 서서 서로 희롱하는 짓을 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을 보이었다.
우리 군사가 장전(長箭)을 쏘자 칼로 받아쳐 맞추지 못하게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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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때 을묘 왜변 당시 기록
장전을 쏘니까 왜구들이 칼로 쳐내는 무협지스러운 스킬을 선보임.
그래서 당황한 조선군은
편전(片箭)을 쏘자 왜인(倭人)들이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 명종 10년 을묘(1555) 5월 30일(계해)
조선이 활을 잘 쏜다는 건 편전의 위력이었음.
편전 –
반으로 쪼갠 대나무 통에 넣어서 쏘는 매우 짧은 특수한 화살
영화 최종병기 활에도 나옴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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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이
2021.03.1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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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다문재
2021.03.11 22:25
전투민족 아님. 한국인이 유별나게 침략을 많이 받고 전쟁을 많이 겪었다는 건 사실이 아님.
의외로 고려부터 평화 시기에 가까움.
삼한 시절부터 반도내의 소국들의 접전과 삼국 시기의 접전을 거쳐 통일신라 이후 평화를 지내다
후삼국 때 다시 접전 그런 식인데 일본은 에도막부 이전에 지방의 소규모 호족들의 난립에도 접전이 일상이었고
전국시대란 게 유력 호족들이 중앙으로 갔다가 접전이 대규모로 확산된 거고 일본 역사학자들은 그래서 지방 호족들의
접전을 다 하치면 일본 전국시대는 700년이란 주장도 있음,
중국은 뭐 왕조의 역사가 300년을 채우지 못 하는데 북방 이민족의 침입에 왕조 말기의 내란 등을 생각하면 전쟁이 극렬한 곳이었고
그나마 한반도가 중국 대륙의 세력들이 붙기 전에 북방 세력들이 후방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무력 시위한 전쟁과 두 번의 왜란 등을 제외 하면
큰 전쟁도 없었고 고려 때부터 이런 대륙의 형세 변화가 없었을 때 거의 평화 시기였음.
다만 고려는 몽골을 제외하면 자력으로 맞설 수있었는데 조선은 고려보다 군사가 약한 건 사실임.
고려가 몽골을 막아내지 못 한 건 아이러니하게 무신 정권이란 이유가 있음.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할 정예 중앙군의 무신 집권자의 사병화로 제대로 된 출병이 없었음.
몽골 침입 당시 지방의 지방군과 민병대로 방어를 하긴 했는데 저열한 수준과 턱없는 숫자로 잘 막아낸 걸 보면
중앙군이 합세했으면 몽골도 막아냈을 거란 생각은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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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살이라고도 부르고 일반 활의 반도 안되는 사이즈를 날리니까 보고 쳐낼래야 쳐낼수도 없고 존나 빠르고 적이 주워서 재활용도 할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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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전 저거 명중률이 높지 않다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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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로 잘 쏘려고 어마어마하게 훈련 했음.
뭐 조선은 여자들도 놀이로 활을 즐기고
왕도 매일 활을 쏘는 게 운동이었을 정도니
사실 편전이 아닌 국궁도 감으로 쏘는 거라
조선이 활을 잘 쏘는 건 이런 활소기를 일상으로 하는 환경 문제도 있지만
호랑이 때문인 이유도 있음.
호랑이를 창이나 검으로 잡을 수 없으니 활로 잡으려고 죽도로 병사들 훈련시킨 것도 있지.
이후 조총이 들어온 이후론 조총으로 잡았지만
"한국인은 전투민족 "이라는 국뽕들도 있던데
반만년을 내내 대륙과 열도에서 쳐들어온 애들한테 약탈당하고 강간당하기만 했는데 전투민족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