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6월 22일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하면서 시작된 독소전
독일국방군은 북부,중부,남부 3개의 집단군을 편성해 소련영토 전역에 걸쳐 침공을 개시하는데
야전원수 빌헬름 리터 폰 레프의 북부 집단군은 발트3국을 휩쓸며 레닌그라드로
야전원수 페도어 폰 보크의 중부집단군은 민스크, 스몰렌스크 등 주요도시를 점령하며 모스크바로
룬트슈테트 원수의 남부집단군은 코카서스 유전지대와 스탈린그라드를 포함한 소련 남부 공업지대로 향한다
개전하자마자 대숙청의 여파로 상당히 약해져있던 소련군은 당시 유럽 최강이던 독일군에게 처참하게 깨지면서 후퇴하고
붉은 군대의 연전연패와 계속되는 후퇴에 신물이 난 스탈린은 1942년 7월, 한 작전서류에 서명하는데
바로 Приказ № 227, 작전명령 227호(Order 227)야. 서류 내용은 간단해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
그냥 후퇴하면 독일군이 아닌 우리가 널 죽여버리겠다 이 소리야
더 나아가 227호 명령에는 오늘 알아볼 형벌부대의 창설을 지시하는 문구도 개시되어있었어
그럼 대체 이 형벌부대는 어떤 부대일까
형벌부대를 설명하기 전에는 일단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알아봐야해
소련군의 우라 돌격이야
일본군의 만세 돌격과 똑같은 매커니즘으로 적진을 향해 마구잡이로 돌격러쉬하는 전술인데
이 전술은 1942년 7월 스탈린의 227호 명령 서명 후 약 한달 뒤 시작된
독소전 최악의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대대적으로 운용돼
독일 제 6군의 기
스탈린그라드 전투엔 당시 육군 대장 파울루스의 제 6군이 투입되었고, 빠르게 스탈린그라드 시가지를 점령해나가지
당시 스탈린그라드의 소련군은 독일군에게 밀려 마지막 보루인 볼가강 코앞까지 후퇴하게 돼
덩케르크의 영국군들처럼, 이제 독일군이 몰아치기만하면 전멸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지
하지만 여기서 소련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하는데
붉은군대 원수 바실리 추이코프
붉은군대 원수 안드레이 예레멘코
두 원수가 이끄는 4개군단, 자그마치 약 100만의 병력이 증원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6군에게 반격을 개시해
그리고 이 전투에서 우라돌격은 대대적으로 사용되는데,
그 선봉에 섰던 부대가 바로 형벌부대야
그 당시 독일군은 소련군에 비해 개개인의 화력은 우세했지만
밀려오는 엄청난 수의 소련군에 의해 결국 전선이 붕괴되고 말아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돌격하는 소련군은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가 두렵지 않았을까?
당연히 무서웠겠지만, 소련군은 돌격의 최선봉에 형벌부대를 내세우고, 정예군을 비롯한 정규사단은 그나마 차후에 투입하면서
정규군의 피해를 최소화시켰다고해
소련군은 1개 사단에 약 360명의 형벌부대를 꾸려서 최선봉에 내세웠는데
이 부대의 기원은
'기왕 죽여야 할 자들이라면 우리 손으로 죽이느니 그들의 친구인 왕당파 백군에게 그 일을 맡기자'
바로 원조 빨갱이 레닌이 적백내전 당시 창시한 반혁명 분자들로 이루어진 총알받이 부대야
쉽게 말해 군 내부의 배반자&범법자를 총알받이로 내보낸다는 뜻이야
이들은 내통자, 전투에서 겁먹은 병사, 공산주의 이념에 충실하지 않은 자 등으로 이뤄져있었어
어쨋든 소련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이 형벌부대를 다시 부활시킴으로써 전투의 최선봉에 운용했는데
이들은 돌격하다가 독일군에게 죽거나
후퇴하다가 소련군에게 죽거나 결과적으로 죽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격했다고 해
돌격해서 운좋게 살아남으면 그래도 일단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거든
형벌부대는 살아남으면 다음 전투에도 기용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생존자는 거의 전무하다고 보면 될 것 같아
그럼 형벌부대는 육군만 존재했을까?
이만!!
소련과 전쟁한 히틀러를 좆 병신..
소련과 전쟁만 안했어도 유럽을 먹었는데...인터넷에 이런 댓글들 자주 보이는데.
독일은 자원이 없었음. 특히 석유가 나지 않음.그래서 항상 군수 자원부족에 시달렷음.
이걸 배이스에 깔아야됨.
글쓴이가 올린 짤중간에 지도가 나옴... 볼고그라드(스탈린 그라드) 이 지역만 넘어서면 흑해유전임.
히틀러는 이 흑해 유전을 차지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던거임.
근데 이걸 너무도 잘아는 스탈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사생결단으로 독일군을 막은거임.
그래서 히틀러는 졌고....